우리 함께 동학(東學) 하십시다!
#5 도의 시작 (6)
<원문>
先生(선생)의 人格(인격)으로 말하면, 千萬羣中(천만군중)에 特秀(특수)한 人物(인물)이라고 할 수 있으나 先生(선생)도 또한 世上(세상)사람이라 家庭由來(가정유래)의 그 모든 習慣(습관)이며, 世上過去(세상과거)의 모든 糟粕(조박)이며, 其他(기타) 萬般物情(만반물정)에 많이 빼앗겼을 것도 없지 못할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여 世間(세간)에 모든 粉撓(분요)와 胸中(흉중)에 쌓인 모든 繃結(붕결)을 헤쳐버리고 憤發(분발)하여 냅더섰든 것이다. 그리된 結果(결과), 塵念(진념)이 끊어지는 한 옆으로 치우처 너무 靜寂(정적)으로 들어가는 弊(폐)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이즈음에서 先生(선생)은 또 다시 도리켜 사람의 本(본)자리에 돌아 왔나니 이것이 비로소 先生(선생)을 嘆服(탄복)하는 바이다.
總括的(총괄적)으로 말하면 紛繞(분요)로부터 靜寂(정적), 靜寂(정적)으로부터 迷惑(미혹), 迷惑(미혹)으로부터 疑懼(의구), 疑懼(의구)로부터 自覺(자각)으로 들어 갔었나니, 이것을 이른바 能變能化(능변능화)라고 하는 것이다.
先生(선생)은 새로운 眼目(안목)으로써 이 世上(세상)을 내다 보왔다. 先天的(선천적) 人類界(인류계)에 모든 不合理的(불합리적)으로 된것을 一網打盡的(일망타진적)으로 모도 다 뒤집어 버려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졌었다. 그리함으로써 今不聞(금불문), 古不聞(고불문)의 일과 今不比(금불비), 古不比(고불비)의 法(법)을 唱導(창도)하였나니, 이것이 곧 宇宙開闢(우주개벽)의 첫소리다.
過去(과거)의 世上(세상)은 人類(인류)가 人類(인류)다운 生活(생활)이 없었기 까닭에 이제 바야흐로 새 人類主義(인류주의)를 唱導(창도)하여 人類(인류)가 非人類的(비윤리적)으로 生活(생활)하여 온 이 世上(세상)을 새로 開闢(개벽)하자는 目的(목적)을 세운 것이다. 開闢(개벽)의 意味(의미)는 先天(선천)의 잘못을 後天(후천)에 開闢(개벽)하고, 昨日(작일)의 잘못을 今日(금일)에 개벽하고, 前人(전인)의 잘못을 後人(후인)이 開闢(개벽)하여 어디까지든지 人類(인류)가 人類(인류)노릇 할만한 그날까지에 이여가기를 目的(목적)하는 바이다.
<현대어>
수운 선생은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뛰어난 인물이셨다. 하지만 선생도 역시 이 세상의 한 사람으로서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습관이나, 세상의 과거 유산들(낡은 관습과 제도), 그리고 수 많은 외부 환경과 사회적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선생은 세상의 혼란과 자신의 내면에 쌓인 번뇌와 감정을 떨쳐내고, 새롭게 나아가기로 결심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속세의 욕망(진념)을 끊어내고 깊은 고요 속으로 빠져들었으나, 너무 깊은 정적 속에 머물게되는 문제점(폐해)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선생께서는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참된 인간의 길을 찾았으며, 비로소 이러한 깨달음이 진정으로 선생을 존경하게되는 이유이다.
결론적으로, 수운 선생은 세상의 혼란 속에서 깊은 정적(고요)으로 들어갔고, 정적 속에서 의심과 혼란을 경험했으며, 의심과 혼란속에서 두려움을 느꼈고, 그 두려움을 넘어서 비로소 스스로 깨달음(자각)에 이르게 되셨다. 이러한 과정이 바로 스스로 변화하고, 또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변능화(能變能化)라고 할것이다.
수운 선생은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 결과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인간 사회의 불합리한 것들을 모두 깨뜨려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되었고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단숨에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품게되었다. 그리고 지금 들어보지 못한 今不聞(금불문), 과거에도 듣지 못한 古不聞(고불문)의 새로운 사상, 지금 비교할 수 없고 今不比(금불비), 과거에도 비교 될 수 없는 古不比(고불비)의 새로운 사상을 세상에 펼치시니 이것이 바로 宇宙開闢(우주개벽)의 첫 소리인 동학(東學)이다.
과거의 세상은 인간이 인간답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상태였으나 이제는 새로운 人本主義(인본주의) 人間中心(인간중심) 思想(사상)으로, 사람이 인간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목표를 세우신것이다. 즉, 그동안 인간이 비윤리적으로 살아왔던 이 세상을 개혁/개벽(開闢) 하자는 것이다.
개벽(開闢)의 의미(意味)는 과거의 잘못을 미래에서 새롭게 개혁하는 것이며, 어제의 잘못을 오늘 바로 잡는 것이며, 이전 세대의 실수를 후대에서 바로 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사람 노릇 할만한, 인류가 진정한 인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그 날까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할 인류의 목표이다.
<해설>
오늘 단락은 별도의 해설을 붙일것이 없다. 도의 시작이 바로 사람이 하늘이며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동학(東學)의 기본을 말씀하고 있다. 개벽에 대해서는 여런 해석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개벽이란 "사람사는 세상"으로 정의하고 싶다. 사람이 인간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것이 개벽(開闢) 이라고 나는 감히 주장하고 싶다. 그렇다면 과거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고 무엇이 잘못되었으며 무엇을 바로 잡아야 하는가? 그것은 후절에 계속 언급이 된다. 계속 함께 한 장, 한 절 읽어가다보면 분명하게 보일것이다. 이렇게 '동학사' 1장 '도의 시작'을 마친다.
덧붙여 1988년 7월 8일 초선 노무현 국회의원의 대정부 질의중 하신 말씀을 소개드린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894년으로부터 131년 2월 27일 敬天 心告
https://youtu.be/y5ViLPbkxAM?si=LnEzj_Egi5_IkI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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