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동학(東學) 하십시다!
#7 유, 불, 선 삼도와 우리 도 (4)
* 야소교(耶蘇教)에 들어가기전에 선(仙)이 있다. 선(仙)에 대한 공부는 거의 하지 못해 자세한 설명을 드리지 못한다. 최대한 현대어로 번역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원문>
一(일), 仙道(선도)니, 本道(본도)는 또한 中國(중국)으로부터 朝鮮(조선)에 들어온 者(자)이다. 朝鮮(조선) 안에서는 그다지 繁昌(번창)하지는 못하였다. 繁昌(번창)하지 못하는 反面(반면)에는 人間(인간)에 큰 弊害(폐해)는 없었다. 仙道(선도)의 宗旨(종지)는 虛無靜寂(허무정적)을 主張(주장)하는 者(자)이라, 그 道(도)를 하는 者(자)는 世上(세상)을 謝別(사별)하고 空中(공중)으로 向(향)하여 가는 일을 힘써 하는 것이다. 世間(세간) 所謂(소위) 運命說(운명설)은 順理(순리)라 하여 此(차)를 否認(부인)하고 後天(후천)의 몸으로서 先天(선천)의 氣(기)에 거슬러 올라가고 말자는 精神(정신)을 가진 者(자)이다. 世上(세상) 사람들은 다만 春生秋實(춘생추실)의 短期間(단기간)의 物質(물질)만을 먹고 順(순)으로만 살아가기 때문에 그 壽限(수한)이 또한 短期(단기)가 되고마는 것이라 하여, 仙道(선도)는 곧 그것을 뒤집어 日月消長(일월소장)과 春秋迭代(춘추질대)를 떠나 長生不死(장생불사)의 空氣(공기)만을 먹고 長生不死(장생불사)의 사람이 되자 함이다. 사람의 平生(평생)은 아침의 이슬이오 물위의 거품이라, 얼마 안된 期間(기간)에 더러운 티끌을 무릅쓰고 똥배만을 채우겠다고 서로 서로 다투고 죽이고 하는 것이 너무나 寒心(한심)하다는 생각으로 차라리 至苦(지고)의 世上(세상)을 떠나 特至樂(특지락)의 別界(별계)로 가자는 것도 아주 無理(무리)는 아니라 하겠다. 그러나 神仙(신선)도 또한 肉體(육체)를 가진 사람이라, 사람으로서 사람의 情(정)을 아주 끊어버리는 것은 사람의 道(도)에 있어 차마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가장 어렵고, 가장 외로운 飛上天(비상천)의 工夫(공부)를 하느니보다 仙家(선가) 所謂(소위) 化俗同塵(화속동진)의 法(법)을 밝히어 地上(지상)에 있는 많은 동무들과 같이 神仙生活(신선생활)을 만들어 보는 것이 좋을까 한다.
<현대어>
셋째로 선도(仙道)에 대해 말하겠다. 선도는 본래 중국에서 조선으로 들어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널리 번창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널리 퍼지지 못한 반면, 인간 세상에 큰 폐해를 끼치지는 않았다.
선도의 근본적인 가르침은 ‘허무(虛無)와 고요함(靜寂)’을 주장하는 것으로, 이 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현실 세계를 벗어나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힘쓰는 사람들이다.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운명이나 순리를 부정하고, 현재의 몸을 통해 과거의 근원적 기운(先天之氣)에 거슬러 올라가고자 하는 정신을 가진 이들이다.
보통 사람들은 봄에 나고 가을에 열매 맺는, 짧은 기간 동안의 물질적 음식을 먹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수명이 짧다고 한다. 선도에서는 이를 거부하고, 계절의 변화와 태양과 달의 흐름을 초월하여, 오직 장생불사의 맑은 공기만을 먹고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사람의 일생이란 아침 이슬과 같고 물 위의 거품과 같아서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데, 그런 짧은 시간 동안 더러운 욕심에 빠져 뱃속만 채우려고 서로 다투고 죽이는 모습이 너무나 한심하다는 생각으로, 차라리 괴로운 이 세상을 떠나 최고의 즐거움만 있는 다른 세계(別界)로 가자고 하는 주장도 전혀 무리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선(神仙)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육체를 가진 사람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인간의 정(情)을 완전히 끊어버린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상 차마 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렵고 외롭게 혼자 하늘로 날아오르는 공부를 하기보다는, 선도에서 말하는 ‘화속동진(化俗同塵, 세상 속에 섞여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의 방법을 밝혀내어, 지상에 함께 살아가는 많은 동료들과 더불어 신선처럼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해설>
이 단락에서도 오지영 선생은 신선보다는 현실 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동학에서 강조하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와 연계되어 선도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화속동진(化俗同塵)"은 노자와 불교에서 화광동진(和光同塵 / 화할 화, 빛 광, 한가지 동, 티끌 진)이라 표현한다. 의미는 모두 비슷하다.
앞서 설명 드렸듯 선도가 무엇이냐?라고 질문하신다면 글쓴이는 답하지 못한다. 사실 선도에 대해서는 흥미롭게 생각하지만 명상이나 호흡, 기체조, 단전에 기를 모은다 등등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 솔직히 모른다고 말씀드리겠다. 물론 명상의 효과에 대해서는 체득한바 있지만 설명을 드릴 정도까지는 아니라 이 역시 뭐라 드릴 설명을 해드릴 수 없다. 대중적으로는 배우 강동원이 연기한 전우치(田禹治)가 선도(仙道) 혹은 도술을 배운것으로 나온다. 전우치는 실존 인물이기도 하다.
덧붙여 3월 26일은 안중근(1879.9.2 ~ 1910.3.26) 장군님의 순국일이다. 안중근 장군님은 동학 그리고 김구 선생님과 일화가 있다. 동학 혁명 당시 안중근 장군은 동학 토벌군이셨고 김구 선생은 해월 최시형 신사을 만나 '접주'의 첩지를 받으신 동학 혁명군이셨다.
동학 혁명 당시 김구 선생의 인간됨을 알아본 안중근 장군의 부친 안태훈 선생께서는 김구 선생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셨고 김구 선생의 가족들까지 보살핀다. 당시 김구 선생은 19살, 안중근은 16살이었다. 이때 두분이 직접 대면한것 같지는 않다. 백범일지에도 직접 만났다는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백범일지에는 "맏아들 중근은 열여섯에 상투를 .... 중근은 영기가 넘치고 여러 군인들 중에서 사격술이 제일이어서 ..."라는 대목이 있다.
안중근 장군과 김구 선생의 인연은 계속된다. 안중근 장군께서 이토를 포살했을때 김구 선생은 사건의 배후 인물로 지목, 해주 감옥에 한달여간 투옥되는일도 있었으며 이후 어려움에 처한 안중근 장군의 가족을 김구 선생이 보살피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사돈으로 인연을 이어간다.
달리 말하면 안중근 장군과 동학의 직접적인 연결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 안중근 장군은 동학 혁명을 겪으셨고 카톨릭 신자로 누구보다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단순히 반일 민족주의가 아닌 동양 전체의 평화를 목표로 싸우셨다.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논리를 거부하셨고 국가들이 협력하고 서로 존중하는 세계질서를 꿈꾸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족의 존엄과 독립을 위한 자기희생은 감히 뭐라 설명드릴 수 없는것이다.
2025년은 장군께서 순국하신지 115년이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안중근 장군을 대한민국으로 모시지 못하고 있다. 효창공원내 삼의사/사의사 묘역에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선생과 함께 계시지만 안중군 장군님의 묘는 가묘(假墓)이다.

끝으로 장군에게 포살된 이토히로부미를 위해 당시 이 땅에서 이토의 추도회가 열렸다는 어이없는 사실을 알려드린다. 그리고 당시 이토의 추도회를 열었던 이들처럼 2025년 봄, 광화문에서 미국기를 흔들며 자유와 민주, 윤석열을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 헛웃음이 난다. 백번 양보해 자유는 그렇다 하더라도 총칼을 앞세운 계엄이 과연 민주(民主)인지 반문해본다. 보편적 가치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세상을 살고 있는것이 답답하다. 그래서 더욱 안중근 장군님의 순국일을 맞아 나는 장군님을 숭모한다.
오늘 글은 동학사 보다는 안중근 장군님 관련 내용이 많아졌다. 이해를 부탁드린다.
1894년으로부터 131년 3월 25일 敬天 心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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