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사 - 오지영

#2 동학사서-1 (원문)

manissky 2025. 2. 7. 17:34

우리 함께 동학(東學) 하십시다!

 

 

먼저 '동학사' 라는 책과 오지영 선생이 궁금하신분들이 계실것 같아 링크 남겨드린다.

 

오지영 선생에 대하여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8550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동학사' 초고본 : https://e-donghak.or.kr/archive/?menu=132&mode=index&code=prd_0002

한국학중앙연구원 '동학사' 원문 자료 : https://lib.aks.ac.kr/#/search/detail/25646

 

자 그럼 이제 동학(東學)을 함께 해봅시다!

 

 

#2 동학사서-1 (원문)

 

 

東學史序(동학사서)

 

 

東學(동학)의 道()는 그 무엇으로써 되었는가. 그 이름이 東學(동학)이라 하였으니, 그 道()가 東() 하나에만 뜻하였다 함이 可()할 것인가. 其文(기문)에 曰() 至氣今至 願爲大降(지기금지 원위대강)이라 하고 又曰(우왈) 侍天主 造化定(시천주 조화정)이라 하고 又曰(우왈) 萬事知(만사지)라 하였으니 그 意義(의의)는 무엇이며, 그 文()에 弓弓二字(궁궁이자)가 있으니 궁궁(弓弓)은 그 무엇을 意味(의미)하는 것이며, 其文(기문)에 廣濟蒼生 布德天下(광제창생 포덕천하)라 하였으니 廣濟布德(광제포덕)은 그 무엇으로써 할 것이며, 그 文()에 輔國安民(보국안민)이라 하였으니, 輔國安民(보국안민)은 그 무엇으로써 할 것이며, 其文(기문)에 自在淵源(자재연원)이라 하였으니 自在淵源(자재연원)은 그 무엇을 이름이며 그 道()는 儒佛仙(유불선) 三道合一體(삼도합일체)로써 되었다 하니 그 理由(이유)는 어디 있으며, 그 道()는 人乃天(인내천)이라 하니 人乃天(인내천)의 意義(의의)는 어디 있으며, 그 儀式(의식)과 制度(제도)는 어떻게 되었는가.

 

以上(이상)에 말한 바 그 여러 가지의 問題(문제)를 一一(일일)히 다 따저 본다면 나의 見解(견해)는 이와 같다고 말하겠다.

 

天道敎(천도교)를 東學(동학)이라고 이름한 것은 基時(기시) 西學(서학)을 相對(상대)로 나온 말씀이다. 그 이름이 東學(동학)이라고 하여 다만 東() 하나에만 뜻한 것이 아니오, 그 道()가 사람을 한울님이라고 하니만치, 사람이 있고 한울이 있는 곳은 東西南北(동서남북)을 區別(구별)하지 아니하고 世界(세계) 어느 곳에든지 無偏無黨(무편무당)으로 나아가야 옳다고 하는 바이며,

 

至氣(지기)라고 함은 天地間(천지간) 至靈至情(지령지정)한 氣運(기운)을 두고 이름이니, 사람이 다 그 기운(氣運)으로써 生()기어 그 氣運(기운)으로써 사는 줄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며,

 

侍天主(시천주)라 함은 世上(세상) 사람들이 이른바 저 虛空中(허공중)에 別個(별개)의 神()을 두고 이름이 아니오, 사람 自體(자체)에 自在(자재)한 自神(자신)을 두고 이름이며,

 

造化(조화)라고 한 것은 天地間(천지간) 無爲化氣(무위화기)로써 된 造化(조화)를 말한 것이오, 世間(세간)에서 이른바 風雲遁術(풍운둔술)이라고 하는 等()의 造化(조화)가 아니며, ()이라 함은 우리의 德()을 無爲化氣(무위화기)의 德()에 合()하고 우리의 마음을 無爲化氣(무위화기)의 마음에 定()한다는 말씀이며, 萬事知(만사지)라 함은 世上(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萬()가지나 되는 일을 다 알게 된다는 말삼이니, 사람은 누구나 저 살 일은 제가 알어야 된다는 말이다.

 

弓弓(궁궁) 二子(이자)는 水雲先生(수운선생) 得道(득도)의 初() 降筆(강필)로써 된 靈符(영부)에 나타나 있는 그림이다. 그 그림의 形像(형상)이 天然(천연) 마음 心字(심자)의 草書形(초서형)으로 되어 있어 마치 활 弓字(궁자)와 彷佛(방불)하였다. 先生(선생)은 말삼하되, 사람이 그 마음 하나만 잘 찾고 보면 세상에 모든 惡疾(악질)은 스스로 다 없어진다고 하였다. 世上(세상)사람들은 不死藥(불사약)이 제 몸에 있는 줄을 알지 못하고, 그 살길을 山()에나 물에나 弓字(궁자)만을 찾고저 하나니, 그것은 弓弓(궁궁)이 제 마음인 것을 깨닫지 못한 까닭이라고 하겠다.

 

廣濟蒼生(광제창생), 布德天下(포덕천하)라고 한 것은 蒼生(창생)은 모두 病()이 들었고 天下(천하)는 이미 道()가 없어졌으므로 病()든 사람을 널니 건져내여야 하고, 길잃은 사람을 바로 引導(인도)하여야 된다는 말삼이다. 廣濟(광제)라고 하는 것은 다만 말로나 글만으로써 하는 者()가 아니오, 布德(포덕)이라고 하는 것은 傳道(전도)나 入道(입도)만으로써 되는 者()가 아니오, ()을 고칠만한 精力(정력)이 있고 德()을 펼만한 力量(역량)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輔國安民(보국안민)이란 말삼은 水雲先生(수운선생) 當時(당시)에 西學(서학)이 漸漸(점점) ()으로 들어와 淸國(청국)에 먼저 하고 將次(장차) 朝鮮(조선)안으로 들어와 퍼지게 되면 나라 사람의 精神(정신)은 스스로 어지러워지리라는 걱정으로써 한 말삼이다.

 

自在淵源(자재연원)이라 하는 것은 人心(인심)이 卽() 天心(천심)이오, 吾心(오심)이 卽() 汝心(여심)이라는 뜻이니, 世間(세간) 所謂(소위) 師師相授(사사상수)하는 式()과는 天壤(천양)의 判()으로 다른 것이다. 一例(일례)를 드러 말하면, 水雲先生(수운선생)이 海月先生(해월선생)에게 傳()하든 그 式()이다.

 

그 式()은 甲()이 乙()에게 전하고, ()이 丙()에게 傳()하든 그러한 式()이 아니오, 그 마음과 그 마음이 서로 合()하여 不知不識(부지불식)의 中()에서 서로 만나게 되던 靈的(영적) 그것이다.

 

儒佛仙(유불선) 三道合一(삼도합일)이라고 함은 東學(동학)의 道()가 儒佛仙(유불선) 三道(삼도)를 주어 모여다가 만들었다는 말이 아니오, 사람의 自體(자체) 속에는 儒()가 말하는 그 身邊(신변)의 倫理道德(윤리도덕)이 있고, ()이 말하는 그 心邊(심변)의 慈悲理性(자비이성)이 있고, ()이 말하는 그 氣邊(기변)의 命途神化(명도신화)가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儒()가 그 사람의 身一邊(신일변)을 偏主(편주)하였다 함은 可()커니와 사람이 그 儒()의 身()을 비러왔다 함은 不可(불가)한 것이며, ()이 그 사람의 心一邊(심일변)을 偏主(편주)하였다 함은 可()커니와 사람이 그 佛()의 心()을 비러왔다 함은 不可(불가)한 것이며, ()이 그 사람의 氣()를 偏主(편주)하였다 함은 可()커니와 사람이 그 仙()의 氣()를 비러왔다 함은 不可(불가)한 것이다.

 

그리고 보면 東學(동학)의 道()는 그 사람의 身體(신체), 사람의 心性(심성), 사람의 氣運(기운), 이 세가지를 그대로 다 찾어 한 것이라면 可()커니와 儒()의 身體(신체), ()의 心性(심성), ()의 氣運(기운)을 骨董飯格(골동반격)은 낡은 것에 대한 집착, 형식주의 허세, 내용 없는 복잡함으로 해석으로 하였다 함은 不可(불가)한 것이다.

 

人乃天(인내천)이라 함은 한울님이 저 虛空(허공) 속에 따로 있다고 하는 말을 否認(부인)한 것이오, 한울님이 우리 사람에게 있다고 認定(인정)한 말삼이다. 그 理由(이유)로 말하면 저 虛空(허공)의 한울은 그 氣()와 그 理()로써 되었을 뿐이라, 어떠한 靈知靈覺(영지영각)이 없는 것이오, 다만 사람에게 와서 바야흐로 靈知靈覺(영지영각)이 生()겨 나는 것임으로 하여 그것을 이른바 한울님이라고 한다.

 

人乃天(인내천)의 宗旨下(종지하)에 있는 儀式(의식)과 制度(제도)는 그 前()날 虛空(허공)의 한울을 한울님이라고 하든 것과는 天壤(천양)의 判()으로 다르게 된 것이라. 그럼으로써 過去(과거) 所謂(소위) 天道敎(천도교) (오관법) 동학사 1984년 대광민속문학叢書 항목 관/정성 관 | ()의 속자(俗字). (본자) > 五款法中(오관법중奠淸水式(전청수식)은 廢止(폐지)하고, 祈禱式(기도식)은 고처 修煉(수련)이라고 하였나니, 그것은 그 式()이 人乃天(인내천) 宗旨(종지)에 違反(위반)됨으로써이다.

 

東學(동학)의 道()가 이 世上(세상)에 나온지 幾十年(기십년)동안 그 道()를 하노라고 稱()한 者() 數十種(수십종)의 各派(각파)를 通()하여 그 數() 자못 累百萬人口(루백만인구)에 達()하였다. 말로는 비록 그 道()를 하노라고 誇張(과장)하는 者() 많으나, 그 道()의 正體(정체)를 알고 나가는 者()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는 바이다.

 

()은 儒()의 福興(복흥)으로 알고 肉身的(육신적) 倫理(윤리)만을 말하는 者()도 있고, ()은 佛()의 再生(재생)으로 알고 靈的(영적) 生滅(생멸)만을 말하는 者()도 있고, ()은 仙()의 復活(부활)로 알고 氣的(기적) 幻化(환화)만을 말하는 者()도 있으며, ()은 무슨 造化術(조화술)로 알고 迷惑(미혹)하는 者()도 있고, ()은 어떤 政治說(정치설)로 알고 妄動(망동)하는 者()도 있어, 千態萬象(천태만상)의 奇怪(기괴)한 現狀(현상)으로써 많은 사람을 誘惑(유혹)한 弊()가 없지 아니 하였다. 그것을 다 道()라고 이를진대, 東學(동학)의 道()는 그 正體(정체)를 어느 곳에서 찾을는지 그것이 걱정이다.

 

東學(동학)의 道()는 儒() 같어도 儒()가 아니오, () 같어도 佛()이 아니오, () 같어도 仙()이 아니오, 造化(조화) 같어도 別造化(별조화)가 아니오, 政治(정치) 같아도 別政治(별정치)가 아니오, 다만 사람에게 있는 道()를 사람으로 하여금 찾게 하여 사람과 사람이 다 같이 잘 살어나갈 것을 말삼한 것에 不過(불과)한 것이다.

 

그것이 곧 사람이 세가지 잘 먹고 사는 法()을 이름이니, 한가지는 그 마음을 잘 먹어야 사는 일이오, 한가지는 그 氣()를 잘 먹어야 사는 일이오, 한가지는 그 밥을 잘 먹어야 사는 일이라 하는 바이며, 사람이 그 세가지 잘 먹고 사는 일만 다 하고 보면 道()는 스스로 圓滿大道(원만대도)가 될 것이오, 세상은 비로소 太平天國(태평천국)이 되리라 하노라.

 

昭和十三年(道七十九年) 四月  

著者 吳知泳 序

 

1894년으로부터 131 2 4일 敬天 心告

 

책을 쓰신 오지영 선생님 사진이다. 동학사 책 첫머리에 올라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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