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사 - 오지영

#5 도의 시작 (2)

manissky 2025. 2. 14. 16:08

우리 함께 동학(東學) 하십시다!

#5 도의 시작 (2)

<원문>

先生(선생)은 어려서부터 그 마음이 異常(이상)하여 恒常(항상) 世道(세도)의 不平(불평)에 느낀 바 만아여 무엇이든지 모다 그 實地(실지)를 맛보고 고칠 것은 고쳤으면 하는 意趣(의취)를 가졌었다. 先生(선생)의 所經歷(소경력)을 말하면 이와 같다. 집안에 있어 産業(산업)도 하여 보았었고, 市井(시정)에서 장사도 하여 보았었고, 한량들과 같이 활도 쏘아 보았었고, 豪俠者(호협자)와 같이 말도 달려 보았으며, 일찍 儒道(유도)와 佛道(불도)와 耶蘇說(야소설) *耶蘇(야소) 예수의 취음 *이며 諸子百家書(제자백가서)를 모도 다 涉獵(섭렵)하여 보왔었다. 그러나 한가지도 일찍 마음속에 許諾(허락)을 받지 못하여 世上(세상)사람의 各自爲心(각자위심)하는 것을 歎息(탄식)하는 한便(편)에 世上(세상)사람이 *同婦一體 오식(誤植)* 同歸一體(동귀일체)로 걸어나갈만한 길을 生覺(생각)하여 마지 아니하였었다.

<현대어>

선생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어, 언제나 세상의 불평등에 깊이 공감하며,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뜻을 품었다. 선생의 경험을 보면, 집안에서 농사를 짓기도 했고, 시장에서 장사를 하기도 했으며, 한량들과 어울려 활을 쏘기도 하고, 무술을 하는 사람들과 말을 타며 무술 공부를 하기도 했다. 또한 일찍이 유학과 불교, 그리고 예수교(야소교, 기독교), 제자백가서(논어, 맹자, 노자, 묵자 등)까지 두루 섭렵하며 여러 학문을 접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마음속에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세상 사람들이 각자 제 욕심만을 채우는 모습을 탄식하는 한편, 모두가 하나로 화합하며 나아갈 길을 고민하기도 했다.


<해설>

* 수운 선생의 사회적 불평등 혹은 부조리에 대한 고민은 선생의 출신에 따른 문제로 본다.'동학사'에서는 언급이 되지 않지만 다른 책들과 연구자들은 선생의 모친인 한씨가 재가녀로서 수운 선생이 문과에 응시 할 수 없었던 점을 언급한다. 그래서 선생이 무과 응시를 위해 무예를 익혔을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이 무예 공부는 수운 선생께서 쓰신 '용담유사'에 '검결(劍訣)=칼의 노래'로 남아있다. 검결은 칼을 휘두르면서 춤을 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검결'을 조선 정부는 무력에 의한 혁명으로 받아들여 '좌도난정'의 가장 큰 혐의점으로 적용한다. 검결은 동학혁명 당시 동학군의 군가로도 애창되었다고 한다. 

*  동학혁명 당시 '검결, 칼의 노래'가 남아 있었으면 좋았겠으나 남아있지는 않다. 다만 후세에 해석? 혹은 복원? 한것으로 살펴 볼만한것은 무형문화유산 보유자 장효선 명인의 '용담검무'가 있다. '용담검무'는 전라북도 남원에서 문화콘텐츠로 많이 공연된다. 다만 노래 즉 '검결', '검가'가 아니고 '검무'임을 생각하고 한번 살펴보시기 바란다. https://youtu.be/vCYOa9qIGjI?t=40 특별히 '남원'인것은 수운 선생께서 영남 유림의 탄압을 피해 남원으로 피신, '은적암'에 계실때 '검결'을 쓰셨기때문이다.  '은적암'은 지금 흔적만이 남아있고 은적암 아래 '교룡산성'은 동학혁명 당시 김개남 장군의 주둔지였다. 같은 장소에 '선국사'가 있다.

*  수운 선생께서 단순한 경제활동이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삶을 체험하고 소통했다는 점이다. 선비로서 책만 읽은 것이 아니라 경제적 현실을 직접 체험했고 현실 개혁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을것이다. 이때 인본 혹은 민본의 틀을 마련하셨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누구나 쉽게 '동학'을 접할 수 있도록 한글 가사인 '용담유사'를 쓰신것으로 증명된다. 경제 활동과 관련해 선생께서는 나중에 '철물점=도올 김용옥 선생께서는 작은 철물점이 아니라 제철소를 언급'을 경영하기도 하셨다. 다만 사업이 실패해 빚쟁이들에게 쫓겨다니게 된다. ** 후술 하겠지만 빚쟁이들이 집으로 찾아와 생긴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 이 단락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내용은 各自爲心(각자위심)과 同歸一體(동귀일체)이다. '각자위심'은 말 그대로 '각자 자기만을 위한다'는의미이며 '동귀일체'는 '모두가 하나로 돌아간다'는 의미의 '공동체'를 강조한다. 종교적 개념으로 '모든 인간은 본래 하나이며, 다시 하나로 돌아간다'고로도 설명할 수 있지만 사회 개혁과 평등, 함께 사는 세상, 사람사는 세상을 강조한것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 동학, 동학 사상의 시작은 이렇듯 '각자위심'의 사회에서 '동귀일체'의 사회를 향하는것임을 살펴볼 수 있는 단락이다. 


1894년으로부터 131년 2월 14일 敬天 心告

 

남원 교룡산성 입구에 세워지 '김개남 동학농민군 주둔지' 표지목(우), 은적암 터에 세워진 안내문(좌)
남원 '선국사' 뒷편에서 바라본 지리산, 지리산 자락은 물론 남원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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